남큐슈여행 3일차

2018.02.10 20:30

알람에 맞춰 일어나고 싶었는데 7시에 저절로 눈이 떠졌다. 더 자려고 해봤지만 잠이 오지 않아 로비로 내려갔다. 일본인 부부가 아침을 먹고 있었다. 아침 인사를 하고 차를 내렸다. 밤새 비가 내렸는지 땅이 젖어 있었다. 오늘은 해를 보기 힘들겠다 생각했는데 운이 좋게도 조금 후에 구름 사이로 잠깐 해가 보였다. 이른 아침에 뜨는 해를 보니까 왠지 기분 좋은 하루를 맞이하게 되겠다고 생각했다.


머리를 감고 짐을 챙겨 내려왔다. 간단하게 차를 곁들여 빵을 먹고 갈 준비를 했다. 요시미츠가(집주인) 오더니 역까지 데려다 준다고 했다. 미야자키로 가는 전철이 9시 27분이어서 20분에 만나기로 했다. 한 시간 넘게 시간이 남아서 천천히 아침을 누렸다. 해는 금세 사라졌지만 비가 내리고 난 다음 깨끗이 씻긴 전경에 잔잔히 기타 연주가 얹어져 상당히 기분이 좋았다. 


나도 노래를 듣고 싶었다. 왜 이어폰을 두고 왔을까, 나는 상당히 바보였다. 자책하고 있는데 이어폰이 동아줄처럼 하늘에서 내려왔다. 어제 얘기할 때 이어폰을 안챙겼다고 말했는데 요시미츠가 선물로 줬다. 그래서 노래를 다운받았다. 재주소년이랑 나얼, 오왠 신곡으로 플레이리스트를 채우고 비가 와서 잔잔하게 분위기 있는 노래를 핸드폰에 넣었다. 노래를 들을 수 있다니! 역시 해가 도와준게 분명했다.


오늘 일정은 우치우미를 떠나 미야자키로, 미야자키에서 가고시마, 가고시마에서 이부스키로 이동하는 날이었다. 떠나기 싫었다. 원래 숙소 예약을 안하는데 이번에 예약을 다 해버려서 어쩔 수 없이 떠나게 됐다. 취소하고 여기 있을까 했는데 그 비용이 기차 비용이랑 비슷해서 그냥 떠나기로 했다. 어느 여름에 다시 와야겠다고 스스로에게 약속했다.


미야자키까지는 금방 갔다. 책을 읽으면서 중간중간에 필름으로 사진을 찍었다. 창 밖으로 비가 내렸다. 이렇게만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다. 비오는게 싫지는 않았지만 즐겁지도 않았다. 맑은 하늘을 보고 싶었는데 아쉬웠다. 미야자키에서 내려 가고시마로 가는 기차를 바로 탔다. 우동을 먹으려고 했는데 생각보다 시간이 촉박했다. 2호차 비예약석에 탔다. 자리를 잡았는데 아이가 있는 중국인 앞자리였다. 다른 자리로 옮겼다. 역시나 시끄러웠다. 이어폰이 있어서 다행이었다. 기차는 조금 비쌌지만 쾌적했다. 신칸센에 비하면 비싼 편도 아니었다. 기차에서 남은 빵을 먹고 책을 읽고 잠도 자고 필름도 새로 꼈다. 잘못 끼웠는지 뻑뻑했다. 창 밖으로 교복입은 학생들이 많이 지나갔다. 오늘이 토요일인게 어색했다.


2시간 정도 걸려서 가고시마에 도착했다. 미야자키보다 훨씬 크고 사람도 더 많았다. 이부스키로 가는 티켓을 자판기에서 뽑고 주변을 구경했다. 비꾸카메라가 있어서 카메라 구경을 했다. 사고 싶은 카메라가 몇 개 있어서 만져봤다. 탐났다. 아직은 잘 쓸 수 있으니까 욕심을 버리려고 했지만 만져보니까 너무 좋았다. 돈을 많이 벌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시간이 돼서 기차를 타러 내려갔다. 옆에 관광열차도 있었다. 나는 내려갈 때는 일반열차를 타고 올라올 때 관광열차를 타려고 했는데 한 번 들어가보니까 굳이 안타도 될 것 같았다. 사진만 몇 장 찍고 열차를 탔다. 사람이 꽤 많았는데 금방 다들 내렸다. 가고시마 중앙역에서 한 시간쯤 걸려 이부스키에 도착했다. 구름이 많이 끼어있었지만 비는 그쳤다. 역을 나오면 바로 족욕을 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었다. 작은 타월을 꺼내고 발을 담갔다. 피로가 풀리고 기분이 좋았다. 가만히 앉아있기 뭐해서 20분 정도 발을 담그고 책을 읽었다. 여러 사람이 발을 담갔다 뺐다. 그래도 전혀 더럽혀지지 않고 물이 계속 순환되는 듯 했다. 


발을 닦고 짐을 챙겨 숙소로 갔다. 인포메이션에서 가져온 지도를 보고 15분 정도 걸었더니 숙소가 나왔다. 오는 길에 마을을 둘러보는데 사람이 거의 없었다. 관광지가 아니라고 할 정도로 조용했다. 체크인을 하고 카메라, 책, 수건, 텀블러를 챙겨 나왔다. 바로 옆에 모래찜질을 할 수 있는 온천이 있어서 구경만 하고 다시 역 주변으로 나갔다. 딱히 할 거 없는 동네였다. 어슬렁 어슬렁거리다가 카메라 가게를 발견했다. 바로 들어가서 구경을 했다. 오래된 카메라부터 꽤 괜찮은 카메라까지 다양하게 있었다. 특히 니콘 필름카메라 라인이 쭉 진열되어 있었다. 가격이 엄청나게 비싸서 욕심을 내려놓고 왔다. 대신 저렴한 필름카메라들이 있었는데 종류가 정말 다양했다. 가격을 물어보니 진짜 쌌다. 이거 완전 수지맞았다고 좋아하면서 테스트를 해봤는데 기능고장이 난 모델들이 많았고 곰팡이가 있었다. 그래도 정말 저렴해서 사가서 수리할까 했는데 그냥 욕심을 버리기로 했다. 안되는 일본어로 할아버지와 30분을 넘게 카메라 이야기를 하며 구경을 하고 나왔다. 


해가 지고 있었다. 석양이 도시를 아름답게 물들였다. 필름으로 몇 장 담은 뒤 밥을 먹으러 가게를 돌아다녔다. 대부분 이른 시간에 장사하고 쉬었다가 늦은 시간에 다시 문을 여는 가게가 대부분이었다. 다행히 문 연 곳이 있어서 맛있게 식사를 했다. 옆에 일본 가족이 앉았는데 몇 살이냐고 물어봤다. 니쥬핫치라고 했더니 놀래면서 카와이 뭐라고뭐라고 막 했다. 밥도 맛있게 먹고 후식까지 먹은 달콤한 기분이었다.


이미 해가 져서 깜깜해지려고 하고 있었다. 역 앞에 온천에서 발을 담글까 고민하다가 카메라를 떨어트렸다. 멘탈도 같이 떨어졌다. 다행히 후드가 망가지고 본체에 기스가 조금 났다. 렌즈가 깨졌다면 정말 속이 쓰리다 못해 아팠을거다. 발 안담그고 숙소로 돌아가기로 했다. 돌아가기 전에 편의점에 들려서 맥주를 사갔다. 주전부리도 사갈까 하다가 오늘은 그냥 맥주로 마무리하기로 했다. 돌아오는 길이 꽤나 어두웠다. 사람이 정말 거의 없었다. 다들 어디로 갔을까?


숙소에 돌아와 코타츠에 들어가 일기를 쓰고 있는데 숙소에 돌아온 한국 사람들이 하나 둘 거실에 모였다. (중략) 이야기 꽃이 피었고 맥주캔과 사케병이 늘었고 코타츠 열기만큼 우리는 달아올랐다. 처음 만나 이름만 모르고 나이와 사는 지역, 하는 일까지 알게 된 사람들과 사소한 얘기들을 나누는 이 시간이 아깝게 느껴질 수 있을까? 내일이면 사람도 이야기도 흩어져 사라지겠지만 청춘의 뜨거움은 마음 한 켠에 남았으면 좋겠다.


일출


코우치우미, 소내해


열차가 들어옵니다


미나미 미야자키


나는 필름을 샀어야 했을까


2


떠날 준비로 바쁜 관광열차


발 담그면서


뜨겁지는 않고 따뜻한 정도의 온도


아무도 없는 거리


큐슈 최남단 바다


모래찜질하러가는사람들


잘 찾지 않는 오래된 카메라들


이부스키 버스들


내가 생각한 따뜻한 남쪽나라의 온도


광합성 중?


일몰


식당에서


역전, 에끼마에


아이들이 춤추는 곳 같았다


이부스키 스테이숀


저기에 가서 카메라를 떨궜다


네코네코네


홍등


저녁 귀가 중


텅 빈 거리에서


손님을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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